영화 리뷰 - 벌새

우리나라 영화이고 해외에서 많은 상도 받았다는데 독립 영화로 조용히 개봉한 영화. 러닝타임이 이상하게 긴 것도 그렇고 뭔가 오묘한 느낌이 드는 영화였다.

<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앳되고 귀여운 여중생, 그리고 그 뒤로 무너진 성수대교의 그림은 이 영화의 시대 배경이 1994년이라는 걸 강렬하게 보여준다.
출처: 다음 영화>

나 역시 1994년에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의 분위기가 너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. 이 영화가 재미있게 느껴지려면 1994년의 시대 그리고 어른과 아이들의 생각들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본다.

이 영화에서 느껴지는 오묘한 분위기, 그걸 너무 섬세하고 표현한 것 같다. 정적인 장면에서 오는 캐릭터들의 담백한 대화 그리고 이어지는 행동들. 나는 남중 남고를 나와서 잘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여자들끼리 느끼는 그런 동경심과 좋아하는 마음이 어디서부터 나온 건지는 잘 모르겠다. 영지 선생님과 은희와의 관계, 그리고 은희와 한학년 후배인 유리와의 관계 뭔가 여자들만의 후배가 선배나 선생님을 좋아하는 마음이 이성적인 것 같으면서 감성적인데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이런 걸 느낄 정도면 표현력이 엄청난 영화인걸 알 수 있다. 더 놀랍게도 캐릭터들의 대사에서는 그냥 좋아한다는 표현이 전부일 뿐인데도 말이다.

그 다음에 느꼈던 건 1994년이 너무 생각나는 사건들이 하나 하나 보여진다는 것이다. 뜨거웠던 여름 김일성의 사망, 마로니에의 노래 칵테일 사랑, 성수대교 붕괴 등이다. 그런데 영화는 이런 일 자체가 그냥 배경 정도로만 나온다. 아 성수대교 붕괴 사건은 영지 선생님의 죽음과도 이어지니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.

영지 선생님의 차분하고 지적이면서 옳은 일에 대해서는 당당하게 얘기하는 인물로 나온다. 어떻게 보면 은희가 그렇게 좋아할만도 한게, 은희의 현재 상황을 이해해주고 좋은 얘기를 해주기 때문이다.

또 은희 부모님의 모습, 그 당시 우리 부모님의 모습과 크게 다를까도 생각해 볼 수도 있고 계속되는 정적인 화면들에서 자꾸 무언가가 떠오르기도 한다.
영화를 보고 느꼈던 어떤 오묘한 감정과 생각이 작년 플로리다 프로젝트를 보고 난 후의 느낌과 매우 비슷하다.

--- 영화 제목 해설
영화 어디에도 벌새가 등장하지 않고 벌새에 관련된 얘기는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벌새라는 제목이 주는 상징성을 생각해 보면 벌새는 은희 자신을 뜻하는 것 같다. 빠른 날갯짓에도 불구하고 작은 몸짓으로 멀리 가지 못하는 그런 새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 아닐까 싶다.

--- 영화 관람 정보
2019-09-05
CGV 용산아이파크몰